솔직히 저는 〈삼악도〉를 보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거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앞섰습니다. 개봉 직후 CGV 에그 지수가 70점 밑으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도 "혹시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100분간의 상영이 끝나고 나니, 이 영화를 단순히 '망작'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분명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만, 동시에 한국 포크 호러(Folk Horror)로서 보여준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던 작품이었습니다.

포크호러로서의 가능성은 분명 있었습니다
〈삼악도〉는 사건 X파일 형식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최서연 PD(조윤서)가 촬영팀을 이끌고 어느 시골 마을로 사이비 종교 취재를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저는 초반부터 이 영화가 단순한 점프 스케어(Jump Scare) 위주의 공포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어요. 여기서 포크 호러란 민속적·지역적 전통과 결합된 공포를 다루는 하위 장르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특정 지역 공동체의 오래된 신앙이나 의식이 공포의 원천이 되는 방식이죠(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속 마을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음양사 사토 준이치가 세운 삼악도라는 사이비 종교의 성지입니다. 사토에게는 한국인 첩 사이에서 태어난 딸 나미가 있었는데, 이 아이에게 강력한 영적 능력이 있자 본처의 질투로 인해 불에 타 죽임을 당합니다. 죽기 직전 나미는 "내가 죽은 날 부활해 너희 모두에게 복수하겠다"는 저주를 남기죠. 그리고 영화 배경인 현재는 나미가 죽은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설정만 놓고 보면 〈유전〉, 〈미드소마〉, 〈서스페리아〉 같은 해외 포크 호러의 문법을 상당히 참고한 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점이 나쁘지 않다고 봤어요. 익숙한 장르 문법을 한국적 배경—사이비 종교, 일제 잔재, 무속적 정서—과 결합하니까 묘하게 새로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특히 일본 법사들이 매년 한국에 와서 나미의 부활을 막는 의식을 치른다는 설정은, 역사적 맥락과 오컬트 호러(Occult Horror)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여기서 오컬트 호러란 초자연적 존재나 의식을 통한 공포를 의미하는데, 단순한 귀신 이야기를 넘어 종교적·주술적 체계가 공포의 축이 되는 방식입니다.
수위논란,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삼악도〉는 15세 관람가로 개봉했어요. 저는 극장에서 보면서 "왜 이 장면에서 카메라를 돌리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분명 눈이 뽑히고, 귀가 잘리고, 혀가 잘리고, 사지가 찢기는 장면들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 결정적 순간을 보여주지 않아요. 옷 안에서, 화면 밖에서, 컷 전환 사이에서 모든 게 벌어지고 끝나버립니다.
저는 이게 이 영화의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봅니다. 고어 호러(Gore Horror)라는 장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시각적 충격은 특정 유형의 공포 영화에서 핵심 요소거든요. 여기서 고어란 신체 훼손이나 유혈을 극단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단순히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관객에게 실존적 공포와 불쾌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연출 기법입니다. 〈유전〉의 경우 15세 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토니 콜렛의 그 장면은 정말 리얼하게 끔찍했고, 〈미드소마〉와 〈서스페리아〉는 청불이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줬죠.
그런데 〈삼악도〉는 내용상으로는 그런 장면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정작 보여주길 거부합니다. 제가 극장에서 실제로 경험한 건, 영화가 보여주지 않으니 제 상상력으로 그 장면을 채워 넣는 이상한 감상이었어요. "아, 여기서 머리가 으깨지면서 뇌수가 튀어야 하는데..." 하고 머릿속으로 그리는 거죠. 이건 감독이 의도한 '여운'이 아니라, 그냥 겁먹어서 못 보여준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집단 광기에 빠져 서로를 죽이는 장면은, 루카 구아다니노 버전 〈서스페리아〉의 마지막 의식 장면 같은 강렬함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어요. 그런데 영화는 그 잠재력을 끝까지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청불 영화의 평균 관객 수는 전체 관람가 영화 대비 약 30% 낮은 수준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아마 제작사 입장에서는 흥행을 고려해 15세 등급을 택한 것 같지만, 그 선택이 결국 영화의 본질적 매력을 반감시켰다고 봅니다.
미완성연출 속에서도 빛났던 조윤서의 변신
그래도 이 영화에서 건질 게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조윤서의 연기는 분명 인상적이었어요. 초반 환각에 시달리는 PD에서, 중반 자신의 정체를 깨닫는 혼란, 그리고 후반 완전히 각성한 존재로의 변화까지, 그 스펙트럼을 꽤 설득력 있게 소화했습니다. 특히 불 속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은—비록 시각적 임팩트는 부족했지만—조윤서의 표정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스토리 구조 자체도 나름 탄탄했습니다. 최서연 PD가 사실 나미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이라는 반전, 마츠다와 하루카 부부가 부활한 나미를 통제하려다 역으로 당하는 아이러니, 그리고 최 PD가 자신의 능력으로 엄마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죽여왔다는 암시까지. 이 모든 요소가 잘 맞물리면 충분히 기억에 남을 만한 K-포크 호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영화는 그 모든 잠재력을 '거의'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어요. 저는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한 건 관객이 아니라 등급 심의였구나." 결국 〈삼악도〉는 좋은 재료로 요리를 시작했지만, 불 조절을 제대로 못 해서 반쯤 익힌 채 내온 음식 같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확신하게 됐습니다. 지금 한국 호러 영화계에 정말 필요한 건 더 복잡한 스토리나 화려한 CG가 아니라, 청불 등급을 감수하고서라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요. 〈삼악도〉는 그 용기가 없어서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보여준 '될 뻔했던' 가능성 때문에 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