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한 남자가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범죄의 길로 들어섭니다. 처음엔 평범한 실직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니 응원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제발 멈추라고 외치게 되더군요.

만수의 선택: 어쩔 수 없었나, 어리석었나
만수는 25년간 종이공장에서 근무한 중견 기술자였습니다. 지방 도시의 낡은 주택에 살지만 관리직까지 올라간 성실한 가장이었죠. 그런데 실직 후 그가 보인 반응은 극단적이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남성 가장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입니다. 남성 가장이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 내에서 역할을 잃는다는 고정관념이 만수를 범죄로 내몬 원동력이었습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이럴 수밖에 없었나? 법무에게 소리치는 장면에서 만수 스스로도 답을 알고 있습니다. "돈을 못 벌면 집이라도 팔아야죠. 마트 가서 짐이라도 날라야죠." 하지만 그는 "저 기술자야, 전문가"라며 자존심을 내세웁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만수가 불쌍하면서도 답답했습니다. 다른 길이 분명 있는데 왜 굳이 저 길을 가나 싶었거든요.
박찬욱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과 만수 사이의 거리를 조절합니다(출처: 씨네 21 인터뷰). 밀착했다가 떨어졌다가, 공감했다가 비판적으로 관찰했다가를 반복하죠. 그네를 타듯 오가는 이 감정의 진폭 덕분에 우리는 만수를 단순히 동정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저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복잡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치과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만수는 심한 치통에 시달리면서도 치과에 가지 않습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취직할 때까지 참으면 그때 시원하게 해결하겠다는 이상한 고집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웃기면서도 짠했어요. 고통을 쾌감으로 전환하려는 미련한 사람의 모습이 만수의 전체 행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거든요.
남성 정체성의 함정과 알코올 의존
만수는 9년 전 알코올 의존을 끊었지만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영화 초반 행복해 보이는 장면에서도 와인 냄새를 몰래 맡으며 눈치를 보죠. 알코올 의존(Alcohol Dependence)이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심리적·생리적으로 술에 대한 강한 갈망과 조절 능력 상실을 동반하는 질환입니다(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만수의 경우 술을 끊었지만 그 자리를 '남성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대신 채운 것으로 보입니다.
실직은 만수에게 남성성 자체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아내 미리나 아들은 꼭 그렇게 보지 않는데도, 만수는 스스로를 무능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규정합니다. 아들이 경찰에 끌려갔을 때 만수가 보인 반응이 이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살인으로 얻은 자신감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뛰어들죠. "아빠가 넌 절대로 외롭게 두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강렬했지만, 결국 하는 일이라곤 아들에게 거짓말을 강요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진짜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금방 집에 돌아왔고, 가족들도 만수를 다시 신뢰하게 되거든요.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는데 오히려 가족 내 입지가 회복되는 아이러니. 이것이 만수를 더 깊은 범죄로 끌어들입니다. 도덕적 몰락과 남성성 회복이 맞물려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거죠.
폭탄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이를 뽑아버리는 장면은 이 모든 억압의 폭발입니다. 꾹꾹 눌러뒀던 알코올에 대한 갈망, 범죄에 대한 도덕적 죄책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역설적인 해방감을 느끼죠.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장면은 소름 끼치면서도 슬펐습니다. 봉인이 풀린 악마처럼 보였거든요.
가족의 파국: 미리는 알고 있었다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 미리는 남편이 한 일을 압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것이 진정한 도덕적 우화가 되려면 만수의 거대한 역설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한 일이 가족을 파괴한다는 아이러니 말이죠(출처: 영화진흥위원회 GV 자료).
미리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당장 따져 묻지 않습니다. 관객은 이를 두고 각자 해석합니다. 용서했다고 볼 수도 있고, 독립을 준비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첫 출근날 배웅하며 짓는 미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일 수도, 억지로 짓는 가식일 수도 있죠. "집을 안 팔겠다"는 이유도 사과나무 밑을 새 주인이 파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리가 용서하려 했지만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중간 상태라고 봅니다. 갈라서지는 않지만 잘 풀리지도 않는, 평생 투쟁해야 할 관계 말이죠. 이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지 않나 싶어요. 깔끔한 결론보다 이런 모호함이 더 불편하지만 진짜 삶에 가깝습니다.
리원이의 악보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알록달록한 점들이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심오한 음악의 악보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이 아이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알게 됩니다. 천재의 머릿속을 힐끔 들여다본 것 같았죠. 마지막 연주 장면에서 만수는 들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만수는 여기서도 배제되는구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한 일이 결국 자신을 가족으로부터 분리시킨 겁니다.
공장 장면의 소등 시스템(Automatic Lighting System)도 상징적입니다. 소등 시스템이란 AI가 사람의 움직임과 근무 패턴을 감지해 자동으로 조명을 제어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만수가 두리번거리며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뒤에서 불이 하나씩 꺼지죠. 마치 어둠이 그를 등 떠미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너는 필요 없다, 꺼져라"는 메시지를 물리적 에너지로 전달하는 듯했어요.
이어지는 벌목 장면은 순수한 폭력의 이미지입니다. 나무를 난도질하듯 자르는 모습은 인간성에 대한, 만수의 영혼에 대한 폭력을 시각화한 것이죠. 제가 봤을 때 이 영화의 핵심은 여기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자기 합리화를 거듭하며 나쁜 일을 해 가는 과정,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것은 텅 빈 공장과 잘려 나간 나무뿐이라는 것.
'어쩔 수가 없다'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닙니다. 남자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하나가 평범한 사람을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보여주는 도덕적 우화입니다. 만수를 응원하고 싶으면서도 멈추길 바라는 관객의 딜레마가 곧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해설을 들으니 놓쳤던 디테일이 보여서 두 번 보고 싶어 졌습니다. 불편하지만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