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 관객들이 숨죽이고 보다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옆자리에서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파이더맨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는 순간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들 비슷한 표정으로 자리를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다. 요즘 하도 기대에 못 미치는 영화들이 많았던 터라 이번에도 그냥저냥 팬서비스나 좀 하다가 끝나겠지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상을 넘어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듯한 얼얼함이 남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나왔다.

1. 스파이더맨, 징징거릴 거란 오해가 가장 크게 틀렸다
영화 보기 전에 내가 했던 가장 큰 오해는 주인공이 또 온갖 시련을 맞고 징징거리면서 우울함에 빠져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질척거리는 우울한 비가 그쳐가는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이 보여준 것은 징징거림이 아닌, 진정한 영웅으로의 홀로서기였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어버렸고, 한때 가장 가까웠던 옛 인연들이 눈앞에서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타인처럼 대하는데도 그는 그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으며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면서도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거나 억울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진짜 영웅의 품격이 느껴졌다. 만석 관객들이 숨죽이고 보다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옆자리에서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었다"는 소리가 나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모두가 감정적으로 완전히 설득당해 버린 것이다. 나 역시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2. 절체절명 순간, 몸이 스승을 기억했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소름이 돋았던 구간을 꼽으라면 단연 이 장면이다. 주인공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먼저 반응하며 스승의 기술을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순간 극장 여기저기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숨이 턱 막힌 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기록과 기억에서 그의 존재가 완전히 삭제됐는데, 그의 몸은 여전히 그 함께했던 시간과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구나 싶었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상황에서도 그 기술을 자연스럽게 써먹는 그 찰나의 순간이야말로, 그가 과거에 얼마나 깊은 사랑과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였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말 한마디 없이 오직 동작 하나로 서사를 완성해 버리니 가슴이 턱 막히고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세상이 그를 잊었어도 그가 쌓아온 인연과 경험은 몸에 흉터처럼 남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서글프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3. 육체적 고통·구출·고독감, 한 화면에
이번 영화의 연출력에 감탄했던 부분은 바로 육체적 고통과 시민 구출, 그리고 절대적인 고독감이 단 한 화면 안에 동시에 담긴 전투 씬이었다.
피가 터지고 뼈가 부러질 것 같은 육체적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면서도, 아이를 구하고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밀어내는 철저한 프런트라인의 책임감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 수많은 군중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주인공이 느껴야 하는 지독한 고독감이 프레임 전체를 짓눌렀다.
나를 구하러 온 영웅이지만 아무도 그의 진짜 이름을 모르고, 그 역시 누구에게도 자기를 밝힐 수 없는 그 아이러니함이 연출을 통해 폭발하듯 전달됐다. 싸움이 끝난 뒤 피투성이가 된 채 홀로 빌딩 숲 사이에 덩그러니 남겨진 모습을 보는데, 처절함과 쓸쓸함이 한데 엉켜서 소름이 돋았다. 액션의 타격감이나 화려함에만 치중한 게 아니라,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짊어진 묵직한 숙명을 이 한 씬으로 완벽하게 압축해서 보여준 셈이다.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옛 인연들이 알아보지 못해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미소 지으며 돌아서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존재 자체를 포기하는 그 쓸쓸한 미소를 보는 순간, 이 영화는 단순한 히어로물을 넘어섰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극장을 나오자마자 주말에 가장 큰 IMAX 관으로 같은 자리를 또 예매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