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두 손이 폰 아니라 식어가는 피자 조각과 음료수 컵만 꽉 쥐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5분마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뒤집어보고 의미 없이 카톡이나 SNS를 쓸어 올리던 나였는데, 그날 밤 영화 '레드 노티스'를 틀어놓은 2시간 동안은 내 두 손의 위치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화면 속에서 정신없이 몰아치는 추격전과 화려한 액션에 시선을 빼앗겨, 들고 있던 피자 조각의 치즈가 하얗게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모니터에 영혼을 빼앗겨 있었던 것이다.

레드 노티스 정주행, 폰 대신 피자 컵 꽉 쥐고 있던 두 손
두 손이 폰 아니라 식어가는 피자 조각과 음료수 컵만 꽉 쥐고 있었다. 평소 주말 저녁이면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두고도 손에서는 스마트폰을 절대 놓지 못하는 산만한 습관이 있었다. 화면이 조금만 지루해지거나 전개가 느려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폰을 들고 단톡방을 뒤적거리거나 뉴스 기사를 훑어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레드 노티스'를 정주행 하기 시작한 뒤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프닝부터 펼쳐지는 압도적인 박물관 침투 씬과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재치 있는 대사, 그리고 예측을 불허하는 스피디한 전개 때문에 스마트폰 쪽으로는 눈길을 줄 틈조차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들고 있던 피자 조각은 차갑게 식어 치즈가 굳어가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 쥔 음료수 컵 표면에는 얼음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바지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손을 털어내거나 폰을 집어 들 생각조차 못 할 만큼 스크린 속 주인공들의 유쾌하고 아슬아슬한 티키타카에 완벽하게 빠져들어 있었다. 손가락 끝에 묻은 피자 기름을 닦을 시간도 아까워서 그저 음료수 컵을 부러져라 꽉 쥐고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몰입해 있던 나를 발견했다.
레드 노티스 2시간, 폰 액정 0번
영화가 재생되는 2시간 동안 내 스마트폰 액정은 단 한 번도 불이 켜지지 않았다. 2시간 동안 폰 액정이 단 한 번도 안 켜졌다니, 나 스스로도 내 눈을 의심할 정도의 일이었다. 평소 영화 한 편을 볼 때면 중간중간 시계를 확인하거나 알림을 확인하느라 못해도 20번 넘게 켰다 껐다를 반복하던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산만해서 연출이 조금만 지루해지면 화면을 스킵하거나 폰을 만지작거리기 일쑤였는데, 이 영화는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시청자를 가둬두고 끊임없이 쾌감을 던져주었다. 주인공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보물을 찾아 다투고 속고 속이는 반전이 꼬리를 물 때마다, 내 손가락은 소파 밑으로 슬그머니 밀려난 폰 대신 콜라 컵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알림 진동이 울렸는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몰입해 있던 그 2시간은, 그동안 수많은 도파민과 짧은 영상들에 피로해져 있던 내 뇌를 시원하게 비워주는 미친 몰입의 순간이었다. 시계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구성된 엔터테인먼트의 힘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차갑게 식은 폰, 그때 느낀 해방감
엔딩 크레디트가 어두운 스크린 위로 화려하게 올라가고 상영이 끝났을 때, 나는 그제야 참았던 한숨을 크게 내쉬며 소파에 깊숙이 묻었던 허리를 펼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할 때 소파 구석 틈새로 무심코 던져두었던 스마트폰을 찾아 손을 뻗었다. 소파 방석 틈새에 들어가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 올렸는데, 내 손끝에 닿은 건 평소처럼 뜨겁게 발열되어 있던 액정이 아니라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있는 폰의 기계적 감촉이었다. 늘 손에서 놓지 못해 열기가 가득했던 폰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차갑게 식어있는 걸 손으로 만지는 순간, 가슴속에서 지독할 정도로 시원하고 깔끔한 해방감이 왈칵 밀려왔다. 디지털 기기의 끊임없는 알림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마침내 2시간 동안 완벽하게 탈출하여 나만의 몰입을 즐겼다는 사실이 엄청난 카타르시스로 다가왔다.
영화 끝나고 소파 틈새에서 차갑게 식은 폰을 집어 들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차가운 기계의 촉감을 느끼며, 나는 내가 스마트폰의 노예가 아니라 진짜 내 시간을 온전히 통제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묘한 해방감과 승리감을 맛보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디지털 피로에 지치고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이 영화처럼 폰을 차갑게 식혀버릴 완벽한 몰입의 순간을 의도적으로 자주 만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군체 후기, 7,500원 팝콘을 통째로 버린 날 (0) | 2026.08.12 |
|---|---|
| 사랑의 하츄핑 혼자 관람 후기, 팝콘 손이 공중에서 멈춘 날 (0) | 2026.08.11 |
| 영화 오디세이 관람 후기, 최악의 자리가 신의 한 수였던 이유 (0) | 2026.08.11 |
| 영화 노바디2 리뷰, 월급 때문에 참았던 20분이 극장에서 터졌다 (0) | 2026.08.10 |
| 검은 령 오컬트 영화 후기, 불 꺼진 자취방에서 팩 두유를 떨어뜨렸다 (0) | 2026.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