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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치킨 사달라는데 백숙 끓여주는 할머니가 답답했다. 그런데 스물다섯에 다시 봤더니 달랐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그 장면들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다시 화면으로 마주했을 때는 전혀 다른 울림과 깊은 무게감으로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집으로... 첫 관람, 치킨 안 사주는 할머니가 답답했다
어릴 때는 치킨 사달라는데 백숙 끓여주는 할머니가 답답했다. 세상을 모르는 아이의 눈에는 그저 내가 원하는 바삭한 프라이드치킨을 안 사주고 말도 안 통하는 백숙을 내놓는 시골 할머니의 고집과 상황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떠올리면서 내 블로그를 돌아보니 상황이 너무나도 똑같았다. 2~3개월 동안 30~40개 글을 쓰면서 도대체 나만의 독창적인 글이 뭔지 몰라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남들은 글을 쓰면 착착 승인이 난다는데 나는 매일 밤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았다. 그렇게 공을 들여 다 쓰고 보면 결국 남들이 다 써놓은 위키백과 요약본이나 검색 엔진 결과 페이지를 옮겨 적은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와 생생한 감정은 쏙 빠진 채, 남들의 정보만 긁어모아 나열하다 보니 글에 생기가 없고 딱딱했던 것이다. 나만의 진심이나 경험이 담기지 않은 글은 어릴 적 내가 외면했던 백숙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 내가 경험한 진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해 밤마다 혼자 타이핑을 치다 지쳐 잠들기 일쑤였고, 블로그 모니터를 바라볼 때마다 한숨만 나왔다.
집으로... 재관람, 할머니가 진짜 연출가로 보인 날
스물다섯에 다시 보니 할머니가 화려한 언어나 기술 없이 오직 묵직한 진심만으로 사람 마음을 무너뜨리는 진짜 연출가로 보였다. 자극적인 대사나 화려한 화면 전환 하나 없이도 관객의 마음 깊은 곳을 흔드는 힘이 그 조용한 손짓과 눈빛에 담겨 있었다.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어릴 땐 보이지 않던 할머니의 굽은 등과 닳고 닳은 손마디가 눈에 들어오면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와 엉엉 울었다.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견뎌낸 그 흔적들이 세련된 대사보다 더 강력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관객이 눈물을 닦으며 '오늘 집에 가서 시골 할머니한테 전화드려야겠다'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서 쿵 하는 울림이 일었다. 아무리 뛰어난 카메라 기술이나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을 써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마음 하나를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련된 말솜씨가 없어도 전달되는 진심의 힘이야말로 영화든 글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나 역시 그 순간 가슴 밑바닥부터 울리는 묵직한 감동을 거둘 수가 없었다.
청년 20명이 털어놓은 절망, 커피 컵 만지작거리며
교회 청년부 20명 단체 관람 후 근처 카페에서 음성 녹음 앱을 켜두고 대화를 기록했다. 다들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커피를 앞에 두고 긴 대화를 이어갔다. 그중 오랫동안 취업 준비를 하며 지쳐있던 한 20대 청년이 식어가는 커피 컵을 만지작거리며 '절망은 포기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시작된다'라고 조용히 털어놨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날 녹음된 청년들의 진짜 고민과 진솔한 고백을 바탕으로 내 경험을 덧붙여 블로그에 글로 풀어냈다. 늘 상위 노출용 키워드만 쫓아 남의 글을 베껴 쓰던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내 마음을 담아 써 내려갔다. 그러자 반응이 즉각적으로 왔다. 늘 체류 시간 30초 미만으로 사람들이 스크롤만 내리다 나가던 유령 블로그였는데, 어느 순간 3분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댓글에는 '지하철에서 읽다가 시골 할머니 생각나서 울 뻔했다'는 진심 어린 반응이 달리기 시작했다.
체류 시간 30초 미만 유령 블로그에서 3분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이 숫자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 남의 정보나 잘라 붙이는 영혼 없는 글쓰기는 완전히 끝났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단 한 줄을 쓰더라도 내가 직접 현장에서 느끼고 눈물 흘렸던 진짜 내 삶의 경험만 블로그에 남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