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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스태프 들어올 때까지 자리 못 일어났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의 마지막 글자가 올라가고 상영관 조명이 환하게 켜질 때까지 발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밀대걸레를 든 청소 스태프가 들어와서 나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들어올 때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가 끝난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여전히 그 깊은 바닷속에 짓눌러둔 채 방치해 두고 나온 기분이었다.

헤어질 결심 5회 차, 볼 때마다 달랐다
영화관에서 2번 보고, VOD가 나오자마자 3번을 더 결제해서 총 5번을 봤다. 보통 같은 영화를 5번이나 보면 장면이나 대사가 익숙해져서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볼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레이어가 껍질 벗겨지듯 드러나며 달랐다. 1회 차엔 엔딩의 묵직한 충격 때문에 청소 스태프가 들어올 때까지 자리에서 못 일어났다면, 2회 차엔 혼자 조용히 극장을 찾아 관람하면서 화면 속 디테일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특히 서래가 입고 나오는 옷의 색깔이 씬마다 Lighting과 공간 조명에 따라 초록색으로 보였다가 순간 파란색으로 변하는 착시 현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인물들의 복잡하고 모호한 심리 상태를 의상 색감의 착시로 연출해 낸 연출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인공의 뻑뻑한 눈에 인공눈물을 천천히 넣어주는 장면은 웬만한 직관적인 애정 씬보다 훨씬 더 야하고 관능적으로 다가왔다.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한 정적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가 교차하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그 찰나의 순간이야말로 그 어떤 노출이나 스킨십보다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미친 몰입감을 선사했다. 5번을 다시 돌려보면서 씬 하나하나에 숨겨진 감독의 집요한 미장센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난 소름이자 쾌감이었다.
포장마차, 홍합탕 식어가는데 소주 2병
영화관을 나와 마음이 붕 뜬 채로 친한 친구를 불러내 집 근처 허름한 포장마차로 향했다. 시원하게 시작했던 홍합탕이 찌개 그릇 안에서 까맣게 다 식어가는데도 우리는 숟가락을 들 생각조차 못 하고 소주 2병을 비워냈다. 친구가 뚝배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사랑한다는 직관적인 말 한 번도 안 나오는데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냐'라며 툭 한마디를 내던졌다.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혀서 우리는 소주 한 잔을 기울일 때마다 영화 속 장면을 하나씩 얹어서 마셨다. 이 주일의 마침표가 어쩌니,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의 모래사장이 어쩌니 하면서 한 잔 거듭할 때마다 묵직한 서사를 대화로 씹어 삼켰다. 안주도 제대로 안 먹고 '술을 아무리 마셔도 전혀 취하지도 않고 괜히 마음만 쓸쓸해진다'며 짠하고 잔을 연속해서 부딪쳤다. 포장마차의 붉은 천막 위로 빗물 소리가 토독토독 떨어지는 가운데, 쓸쓸한 소주잔 속으로 영화의 잔상이 계속해서 겹쳐 보였다. 사랑한다는 대사 한마디 없이 지독한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 그 미친 서사 때문에 그날 밤 포장마차에서의 술자리는 근래 들어 가장 쓸쓸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묵직한 밤이 되었다.
새벽 2시~6시, 6000자 쏟아낸 뒤 체류 6분 40초
포장마차에서 집으로 들어온 뒤에도 가슴속에서 출렁거리는 감정이 도저히 주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컴컴한 방 안에서 모니터 불빛만 켜두고 새벽 2시부터 아침 6시까지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논스톱으로 키보드를 타이핑했다.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생각과 감정들을 쏟아내다 보니 A4 용지 4장 반, 무려 6000자가 넘는 장문의 글이 완성됐다. 상위 노출이나 키워드 따위는 완전히 잊은 채 오직 내가 느낀 소름과 서래의 눈빛, 포장마차에서 친구와 나누었던 솔직한 대화들을 미친 듯이 기술해 내려갔다. 그리고 그 포스팅을 블로그에 올려둔 뒤 통계를 확인했는데 진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일반적인 영화 리뷰 블로그 글들이 들어와서 20~30초 만에 스크롤을 내리고 나가는 유령 글인 반면에, 내 글의 평균 체류 시간은 6분 40초라는 미친 숫자로 껑충 뛰어올라 있었다. 무려 보통 블로그들의 10배가 넘는 시간을 사람들이 내 글에 머물며 진득하게 읽어 내려간 것이다. 심지어 댓글 창에는 '포장마차 친구 대사 부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는 기다란 장문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짜 미쳐서 쓴 글은 수치로 증명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흉내 낸 검색용 정보가 아니라 내 모든 감정을 갈아 넣은 진짜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고 시간마저 묶어둔다는 것을 통계 숫자로 똑똑히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5번을 넘게 보고도 여전히 가슴을 흔드는 이 영화처럼, 앞으로 내 블로그에도 영혼을 쏟아부은 진짜 내 삶의 기록들만 남기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