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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열 번째 여름 후기, 새벽 5시 40분까지 글을 쓰게 만든 영화

lottohouse2026 2026. 8. 6. 00:50

목차


    그날 밤 친구가 얼음컵 물방울 쓱 닦더니 '우리도 벌써 열 번째 여름'이라고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심야 영화로 '우리의 열 번째 여름'을 같이 보고 나와서,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캔맥주와 얼음컵을 놓아두고 앉아있던 때에 벌어진 일이다. 영화가 끝난 뒤 한참 동안 둘 다 말이 없다가, 테이블 위에 흥건하게 고인 맺힌 물방울을 친구가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쓱 닦아내며 던진 그 한마디가 내 가슴속 깊은 곳을 아주 묵직하게 건드렸다.

    영화 우리의 열 번째 여름 관련 포스터
    영화 우리의 열 번째 여름 관련 포스터

    우리의 열 번째 여름, 연애 소설 아닌 10년짜리 인생 다큐

    누군가 이 영화를 두고 '달달한 청춘 로맨스 여름 영화지?' 하고 물어본다면, 이 영화를 실제로 본 사람들은 다들 억울해하면서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반박하는 영화다. 겉보기에는 새파란 여름날의 푸르른 배경과 청춘 남녀의 달콤한 연애 이야기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온 10년짜리 세월을 그대로 녹여낸 치열한 인생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스무 살 남짓한 어린 시절에 만나 서로의 지질함과 뜨거움을 모두 목격하고, 사회라는 높은 벽에 부딪혀 비틀거리면서도 서툴게 버텨내는 인물들의 모습이 화면에 가득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들의 얼굴 위로 나와 내 친구들의 지난날들이 겹쳐 보여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설렘이나 달콤함보다는 삶의 무게와 서글픔,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견뎌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내 지나온 청춘의 궤적을 10년 치 영상 기록으로 다시 훑어보는 듯한 서늘하고도 묵직한 몰입감을 선사해 주는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열 번째 여름, 새벽 5시 40분까지 멈추지 못한 이유

    편의점 앞에서 얼음컵 물방울 쓱 닦더니 '우리도 벌써 열 번째 여름'이라고 말하던 친구의 모습이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결국 옷도 제대로 바꾸어 입지 못한 채 노트북을 켜고 앉아서 그날 밤 느꼈던 감정을 글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벽 1시 반에 시작된 타이핑은 아침 5시 40분까지 무려 4시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엉켜있던 지난 10년의 기억들과 그날 영화의 잔상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글을 쓰다가 문득 창밖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게 느껴지길래 벽시계를 봤더니 어느새 시침이 아침 5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얼얼하게 감각이 마비되어 가고 눈은 인공눈물이 절실할 만큼 뻑뻑해져 있었지만, 가슴 밑바닥에 오랫동안 얹혀있던 묵직한 답답함이 싹 내려가면서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 진짜 경험과 울림을 글로 토해내는 순간이 주는 엄청난 해방감이었다.

     

    경조사장 입구, '살 빠졌다?' 한마디로 6개월이 풀렸다

    사실 우리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20대 중반 한창 취업 준비로 예민하고 가난했던 시절, 보잘것없는 술자리에서 자존심을 건드리다 말싸움이 붙었고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남처럼 서먹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비 오는 날 혼자 투투치킨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내가 먼저 사과할까' 하고 카톡 문장을 수없이 적었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차마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었다. 그러다 다른 지인의 경조사장 입구에서 정말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는데,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피하지 않고 '너 살 빠졌다?' 하고 툭 한마디를 건넸다. 그 싱거운 한마디에 6개월 동안 가슴속을 짓누르던 어색함과 미움이 거짓말처럼 눈 녹듯 자연스럽게 풀어져 버렸다. 빗속에서 혼자 치킨 뼈를 뜯으며 망설이던 밤들이 무색할 정도로, 진짜 인연은 거창한 사과나 변명 없이도 단 한마디의 덤덤한 안부로 다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월이 지나 당시의 우리를 돌이켜보니 그 지질했던 사연조차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발행 못 하고 임시저장함 소장 중, 그 친구랑 소주 한 잔 할 때 둘이서만 꺼내보려고 한다. 그날 새벽에 4시간 동안 쏟아부어 쓴 글은 여전히 내 블로그 임시저장함 속에 조용히 잠자고 있다. 남들에게 공개해서 조회수를 올리는 용도가 아니라, 조만간 그 친구를 만나 시원한 소주잔을 부딪칠 때 우리 둘만의 10년을 기념하며 슬그머니 꺼내 보여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