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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비밀번호 앞 1~2분 석상처럼 굳어 있었음. 심야 영화로 '곡성'을 다 보고 차가운 밤길을 지나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익숙한 내 집 현관문 도어록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손가락이 미동도 없이 멈춰 서 버렸다. 어두컴컴한 복도 한복판에서 디지털 도어록의 푸르스름한 숫자를 올려다보는데,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이성을 송두리째 마비시키던 기괴한 의심과 기이한 잔상이 복도 어둠 구석진 곳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아 차마 손가락을 대지 못했던 것이다.

곡성 오해, 점프스케어 공포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작품을 흔히 나오는 잔인한 점프스케어 슬래셔나 엑소시즘 빙의물 공포영화로 대충 오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징그러운 귀신이 툭 튀어나오거나, 피가 사방으로 튀는 일회성 자극으로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전형적인 공포 영화일 거라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상영관 어둠 속에서 마주한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외형적인 악마나 기괴한 흉물 그 자체가 아니었다. 진짜 공포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파고들어 뇌리를 사정없이 후벼 파는 지독한 의심의 전염성이었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 피어오르는 조그만 소문과 의심이 어떻게 한 인간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서서히 파멸과 지옥으로 밀어 넣는지를 영화는 미친 듯이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화면 속 인물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믿음을 철회하는 순간마다 밀려드는 정신적 압박감이 귀신이 나오는 장면보다 수십 배는 더 오싹하게 가슴을 짓눌렀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보다 내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서늘한 불신이 나 자신을 어떻게 괴물로 만들어가는지 목도하는 과정 자체가 지독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곡성 현관문, 비밀번호 앞 1~2분 굳어 버린 손가락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주변의 정적과 밤바람 소리조차 무섭게 느껴졌지만, 진짜 위기는 내 집 앞 현관문에서 찾아왔다. 현관 비밀번호 앞 1~2분 석상처럼 굳어 있었음. 지친 몸을 이끌고 도어록 앞에 섰는데, 버튼을 누르려던 내 손가락이 얼음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어 버렸다. 버튼을 누르는 자그마한 삑- 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순간, 등 뒤의 어둠 속에서 영화 속 그 붉은 눈의 외지인이나 기괴하게 꺾인 형상이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은 극도의 환청과 환각에 시달려야 했다. 마른침조차 삼키지 못한 채 손가락을 공중에 뜬 상태로 고정한 채 서 있는데, 목덜미와 등 뒤로 차가운 식은땀이 쭉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보금자리인 집조차도, 영화가 남긴 미친 잔상과 불신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서늘하고 위험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순간이었다. 식은땀이 바지 위로 떨어질 때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문이 열리고 집 안으로 들어선 뒤에도 현관문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며 잠금장치를 걸어야 했다.
다시 볼 일 없음, 멘털이 아까운 영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 한구석에 얹힌 묵직하고 찝찝한 잔상은 쉽게 거두어지지 않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웰메이드 영화가 있고 뛰어난 연출력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있지만, 나는 이 영화를 내 인생에서 다시 볼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단언한다. 내 소중한 멘털과 정신력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미있었다거나 무서웠다는 감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관객의 영혼과 정신을 묘하게 오염시키고 피폐하게 만드는 지독한 독극물 같은 영화였다. 화면 가득 넘쳐나는 불길한 에너지가 보는 이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침투하여 일상의 평온함마저 빼앗아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잘 만든 영화라는 점에는 단 1도 이의가 없지만, 그 완성도가 오히려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타인에 대한 미약한 불신조차 지옥의 불씨로 만들어 버리는 그 압도적인 메시지 앞에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다시 꺼내 보기엔 제 멘털이 너무 아까운, 아주 지독하고 강력한 영화.
다시 꺼내 보기엔 제 멘털이 너무 아까운, 아주 지독하고 강력한 영화였습니다. 그날 밤 현관문 앞에서 굳어버렸던 그 오싹한 기억을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영화에 대한 어떠한 재관람이나 관련 해석 영상조차 다시 찾아보지 않은 채 이 서늘한 기억을 완전히 묻어두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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