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오른쪽 바지 주머니 지갑이 묵직하고 뜨겁게 느껴졌다. 극장 안에서 영화 가버나움을 보는 내내 오른쪽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두툼한 지갑의 존재감이 이상하리만치 무겁고 뜨겁게 내 피부를 짓눌러왔다. 화면 속 자인과 어린아이들이 하루 한 끼를 구하지 못해 절규하고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동안, 내가 바지 주머니 속에 품고 있던 몇 장의 현금과 신용카드가 마치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 쥐고 있는 부끄러운 장물처럼 느껴져 가슴이 서늘하게 죄어왔다. 배부르고 안락한 공간에 앉아 타인의 비극을 관람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죄책감이 되어 내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파고 있었다.

가버나움, 1시간 넘게 지갑을 틀어쥔 손
오른쪽 바지 주머니 지갑이 묵직하고 뜨겁게 느껴져서 결국 영화 중반부터는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지갑을 1시간 넘게 틀어쥐고 있었다. 스크린 속 주인공 자인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호받지 못한 채 길바닥에서 어린 동생을 짊어지고 버텨내는 그 참혹한 생존의 현장을 목도하는 동안, 내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땀으로 지갑 가죽이 축축하고 끈적해질 정도였다. 영화를 보면서 편하게 음료수를 마시거나 허리를 고쳐 앉으며 자세를 고치는 사소한 행위조차 화면 속 아이들 앞에서 지독한 기만이자 죄악처럼 느껴졌다. 태어나 존재를 증명할 서류조차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의 절박한 눈빛과 내 손에 쥐어진 지갑의 온도가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되어 가슴을 지독하게 후벼 파는 기분이었다. 상영관의 어두운 불빛 아래서 나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고,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조명이 환하게 불이 켜질 때까지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내 삶의 안락함과 아무렇지 않게 누려온 평범한 일상이 스크린 속 생존의 비극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노출되는 듯한 압도적인 중압감이었다. 자인의 서러운 눈망울이 잔상으로 남아 내 손에 쥐어진 지갑 가죽의 감촉을 더욱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세면대에 지갑 올려두고 어푸어푸
엔딩 크레디트의 자막이 다 올라가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설 때, 나는 바지 주머니 속 지갑을 불법 장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손으로 꽉 감싸 쥐고 빠르게 극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로 곧장 뛰어 들어가, 차가운 대리석 세면대 위에 내 지갑을 덩그러니 올려두고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었다. 그리고는 손에 물을 듬뿍 묻혀 찬물로 세수를 어푸어푸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에 사정없이 튈 때마다, 화면 속 참혹한 현실을 안전한 극장 의자에 앉아한 편의 영화로 감상하고 나온 내 번질거리는 얼굴의 안이함이라도 차가운 물로 씻어내고 싶었던 엉뚱하고도 절박한 발악이었다. 찬물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며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세면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젖은 지갑은 여전히 차가운 빛을 발하며 나를 묵묵히 노려보는 듯했다. 세상의 가장 어둡고 비참한 구석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나는 얼마나 따뜻하고 배부른 공간에서 평온한 고민이나 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깊은 자괴감이 거친 물음표가 되어 내 가슴을 사정없이 때렸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찬물로 젖어있었지만, 눈시울만큼은 붉게 충혈되어 쉽게 물기가 거두어지지 않았다.
가방 자크를 천천히 잠근 이유
세수를 마치고 세면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젖은 지갑을 집어 들었을 때, 마치 무게감이 수십 배는 더 무거워진 죄책감의 덩어리를 손으로 직접 집어 올리는 기분이 들었다.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지도 않게 툭 찔러 넣던 평소의 습관대로 할 수가 없어서, 대신 들고 있던 가방 앞주머니를 열어 지갑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고 자크를 천천히 잠갔다. 자크가 스르륵 닫히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내 안에서 무언가 굳은 다짐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지갑을 주머니가 아닌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겨두듯 넣는 그 행동 자체가, 내 안이했던 삶에 대한 경종이자 작은 반성의 표시였다. 오늘 밤만큼은 이 안락함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는 말자는 조용한 다짐이었다.
오늘 밤만큼은 이 안락함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는 말자는 조용한 다짐. 지갑을 가방 깊숙이 집어넣고 극장 밖을 나서는 밤길 위에서, 나는 내가 누리는 이 따뜻한 집과 한 끼의 온기가 결코 당연한 권리가 아님을 가슴 깊이 새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컴컴한 방 안에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조그만 후원 단체를 찾아 손가락을 움직이며 내 삶의 안이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동주 감상, '오늘 밤 나는 참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구나 (0) | 2026.08.14 |
|---|---|
| 사람과 고기 후기, 6만 원짜리 삼겹살 예약을 스스로 취소했다 (0) | 2026.08.13 |
| 레드 노티스 정주행 중 폰 20번이 0번 됐다 (0) | 2026.08.12 |
| 영화 군체 후기, 7,500원 팝콘을 통째로 버린 날 (0) | 2026.08.12 |
| 사랑의 하츄핑 혼자 관람 후기, 팝콘 손이 공중에서 멈춘 날 (0) | 2026.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