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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후기, 어른 되고 처음으로 이어폰 없이 버스를 탔다

lottohouse2026 2026. 8. 16. 10:28

목차


    이어폰을 꽂는 행위가 영화가 남긴 정적을 더럽히는 것 같아서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영화관을 나와 익숙하게 주머니 속 이어폰 케이스를 집어 들고 귀에 꽂으려던 순간, 내 손가락이 공중에서 스르륵 멈춰 섰다. 3시간 동안 스크린을 채우던 낮고 정갈한 자동차 엔진 소리와 인물들 사이의 묵직한 침묵의 잔상이 가슴속에 여전히 넘쳐흐르고 있었는데, 거기에 인위적인 음악이나 자극적인 소리를 덮어씌우는 행동 자체가 영화가 내게 남겨준 고요한 울림을 훼손하는 비겁한 짓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포스터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포스터

    드라이브 마이카, 단 1초도 귀를 심심하게 못 두던 사람

    사실 나는 일상 속에서 단 1초도 내 귀를 심심하게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는 지독하게 산만한 사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심지어 집 앞 편의점에 3분 동안 다녀오는 길에도 무조건 귀에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나 유튜브 영상, 혹은 음악을 틀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침묵이나 정적이 찾아오는 순간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일종의 강박증처럼 오디오 소음으로 내 뇌를 매 순간 가득 채워두었던 것이다. 심지어 얼마 전 출근길에 이어폰을 집에 두고 온 날에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20분의 시간이 마치 끝없는 지옥처럼 아득하고 답답하게 느껴져서 불안함에 손톱을 물어뜯기까지 했다. 세상의 소음이나 내 안에서 들려오는 진짜 생각들과 단 둘이 면대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늘 소리의 장막 뒤로 숨어버리던 지질한 모습이었다. 세상이 던지는 소리와 가식적인 음악들로 귀를 막아둔 채, 정작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진짜 외로움이나 진심의 소리에는 단 한 번도 귀를 기울여본 적이 없었던 셈이다. 소리가 끊기는 순간 밀려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통제하지 못해 매일 스마트폰 화면과 이어폰 케이스만 만지작거리며 살아가던 나였다.

     

    영화관 나오며 이어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이어폰을 꽂는 행위가 영화가 남긴 정적을 더럽히는 것 같아서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어두운 상영관에 환하게 불이 켜졌을 때, 내 가슴속은 거대한 침묵과 낮게 깔리는 디젤 엔진 소리의 잔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극장 출구를 나와 밤길을 걸어가며 평소처럼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이어폰 케이스를 꺼내 들었지만, 차마 뚜껑을 열고 귀에 꽂을 수가 없었다. 붉은 사브 승용차가 조용히 도로를 달릴 때 들리던 그 정갈한 엔진 소리와, 인물들이 침묵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가만히 응시하던 그 묵직한 정적이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적을 뚫고 가벼운 가요나 세상의 소음을 밀어 넣는 순간, 영화가 내 가슴에 새겨둔 깊은 울림이 흔적도 없이 파괴될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꺼냈던 이어폰을 도로 외투 주머니 깊숙한 곳으로 조용히 다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귀에 아무것도 꽂지 않은 무방비 상태로 조용히 야간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덜컹거리는 버스 창문에 머리를 대고 앉아, 이어폰 없이 버스 안내 방송 직전에 나오는 조그만 '톡' 소리와 도로 위 타이어 마찰음을 온전히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귀를 채우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내 삶의 진짜 숨소리가 조용히 들어차기 시작했던 밤이었다.

     

    영화 보고 난 뒤 제 발로 이어폰을 가방 구석에 처박았다

    영화가 내 일상에 던진 파문은 그날 밤 버스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며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꺼내 귀로 가져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귀에 닿기도 전에, 지난밤 영화 속에서 차가운 눈길을 조용히 누비던 붉은 자동차의 나지막한 디젤 엔진 소리와 조용한 침묵의 잔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귀를 강제로 채우려던 내 손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왔다. 굳이 인위적인 소리로 내 귀와 뇌를 마비시키지 않아도, 세상이 내는 소리와 내 안의 조용한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이상한 용기가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이어폰을 외투 주머니가 아닌, 들고 가던 가방 멘 안쪽 구석진 틈새로 깊숙이 처박아버렸다. 단 1초의 침묵도 견디지 못해 손톱을 물어뜯던 내가, 영화 보고 난 뒤 제 발로 이어폰을 가방 구석에 처박았다.

    영화 보고 난 뒤 제 발로 이어폰을 가방 구석에 처박았다. 소음으로 내 귀를 가두고 내 안의 진짜 소리를 회피하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가방 구석에 이어폰을 처박아둔 채 도로의 바람 소리와 내 가슴의 덤덤한 울림을 똑똑히 마주하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