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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후기, 청소부 올 때까지 못 일어난 이유

lottohouse2026 2026. 8. 19. 20:35

목차


    팝콘 집으려던 손이 소피 손 장면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떤 장면이었냐면, 마법에 걸려 할머니가 된 소피가 거대한 성 안에서 자신의 서툴고 주름진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묵묵히 버텨내는 순간이었다. 팝콘 상자 안으로 손을 넣어 한 움큼 집어 올리려던 내 오른손이 스크린 속 그 정적과 손에 담긴 묵직한 정서에 사로잡혀 공중에서 미동도 없이 그대로 굳어 버린 것이다.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관련 포스터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관련 포스터

    하울의 움직이는 성 리뷰, 영화 시작 20분 만에 손이 굳었다

    팝콘 집으려던 손이 소피 손 장면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영화 시작 20~25분쯤 흘렀을까, 불과 10~15초 남짓 이어지던 소피의 손 연출 장면에서 내 오른손은 팝콘 상자 위에 올려진 채 뻐근하게 굳어 버렸다. 예전에는 단순히 예쁜 그림체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하울이라는 잘생긴 캐릭터가 나오는 로맨스 판타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스크린으로 마주한 그 장면은 완벽히 달랐다. 갑작스럽게 노인이 되어버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자신의 몫을 조용히 다해나가는 소피의 주름진 손바닥이, 일상의 사소한 피로에도 징징거리며 도망치고 싶어 하던 내 지질한 모습과 너무나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고요함과 그 손에 담긴 삶의 무게 때문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손가락 마디가 뻐근해질 정도로 힘을 주고 공중에 손을 멈춘 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가슴 밑바닥에서 알 수 없는 묵직한 울림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동화인 줄 알았던 화면 속 세계가 내 가슴을 사정없이 짓누르기 시작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엔딩, 청소하는 분 들어올 때까지 못 일어났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의 자막이 밝아진 상영관 위로 올라가고 완벽하게 불이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상영관 문이 열리고 청소하는 분이 빗자루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들어올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의자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주변 관객들이 하나둘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내 몸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엔딩 불이 켜질 때까지 의자에 멍하니 앉아 화면이 남겨준 서늘하고도 단단한 체온을 가만히 곱씹고 있었다. 마법과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속에서도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주며 체온을 나누던 하울과 소피의 모습, 그리고 거대한 성이 덜컹거리며 걸어가던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끝없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다 빠져나가 텅 빈 상영관 안에서 청소부 분의 빗자루질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질 때쯤이야 비로소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날 수 있었다. 가슴을 가득 채운 그 단단한 온기 때문에 도저히 가벼운 걸음으로 극장 밖을 나설 수가 없었던 밤이었다.

     

    일어나는 것 자체가 무례하게 느껴진 이유

    엔딩 불이 켜졌을 때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내게 안겨준 숭고한 마법을 깨뜨리는 것 같아 너무나 무례하게 느껴졌다. 영화관에 들어설 때만 해도 그저 시각적으로 즐거운 말랑한 로맨스 판타지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묵직한 삶의 체온에 뒤통수를 사정없이 얻어맞고 나오는 영화였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밤거리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를 혼자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영화 속 거대한 성이 덜컹거리며 발을 내딛던 '쿵쾅' 소리가 자꾸만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멈춰 서서 어두운 골목 뒤편을 힐끔거리며 돌아보게 되었다. 현실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소피와 하울이 버텨낸 그 강인한 삶의 체온이 내 목덜미와 등 뒤에 여전히 밀착되어 나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본 그들의 움직이는 성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고단한 삶을 버텨내기 위해 가슴속에 하나씩 품고 살아가야 할 진짜 마음의 집이었다.

    말랑한 로맨스 판타지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묵직한 삶의 체온에 뒤통수 얻어맞고 나오는 영화. 그 밤이 지나고 며칠이 흐른 지금도 나는 일상의 피로가 밀려올 때마다 그 묵직했던 소피의 손과 움직이는 성의 온기를 떠올리곤 하며, 조만간 나를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다시 내어 상영관 맨 뒷자리를 한 번 더 예매해서 그 묵직한 체온을 온몸으로 다시 느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