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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손도 못 대고 숨을 줄여 쉬었다. 극장 안에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손에 쥐고 있던 팝콘에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한 채 화면 속 두 인물의 관계와 울림에 몰입하느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줄여 쉬고 있었다. 두 주연 캐릭터가 서로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음을 노래하는 감정선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고, 영화가 끝나고 불이 환하게 켜지는 순간까지도 한참 동안 그 묵직한 감정의 여운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위키드 보고 카톡 목록 연 이유
팝콘 손도 못 대고 숨을 줄여 쉬면서 영화를 봤던 그 뜨거운 감정선 때문이었을까,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상영관 조명이 환하게 켜지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카톡 목록부터 열었다. 내 삶에서도 저렇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내 곁을 지켜주었던 진짜 존재가 있었는지 조용히 떠올려 보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움직여 스크롤을 한참이나 내려야 겨우 나오는 오래된 대화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 메시지 목록에서 한참 밀려나 아득한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던 친구의 대화창을 터치해 들어가는 순간, 고마움보다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까맣게 잊고 지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슴을 턱 하고 먼저 막아서게 만들었다. 화면에 남아있는 과거의 정겨운 대화들을 하나씩 올라가며 읽어 내려가는데, 내가 힘들고 휘청거릴 때마다 군말 없이 내 곁에 서서 어깨를 내어주었던 그 친구의 얼굴이 뚜렷하게 잔상으로 맺혔다. 남들이 다 겉치레 인사를 주고받을 때도 오직 내 진심을 알아채주고 다독여주었던 그 인연을, 정작 나는 일상에 치여 너무나 가볍게 방치해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던 밤이었다.
1년 6개월 공백, 10초 만에 시동 걸린 우정
스마트폰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친구와 주고받은 마지막 연락이 무려 1년 6개월 전이었다. 심지어 그 마지막 대화조차도 성의 없는 생일 축하 기프티콘 하나 달랑 보낸 것이 끝이었을 정도로 우리의 관계는 서먹하고 멀어져 있었다. 대화창에 커서를 두고 뭐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야 할지 몰라 3분 넘게 손가락만 꼬물거리며 망설였다. 너무 오랜만이라 뜬금없어 보이지는 않을까, 혹시 나를 잊었거나 서운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용기를 내어 '잘 지내냐, 갑자기 네 생각이 났다'는 솔직한 한 줄을 적어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메시지를 보낸 지 단 10초 만에 숫자 1이 사라지더니 '어냐, 나야 잘 지내지. 웬일이냐!' 하는 반가운 답장이 10초 만에 날아왔다. 1년 6개월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단 10초 만에 다시 시동이 걸려 활활 타오르는 그 친구의 덤덤하고 따뜻한 답장을 확인하는 순간, 극장을 나와 걷던 길거리 한복판에서 혼자 피식하고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월이 지나고 연락이 뜸해져도 진짜 우정은 결코 녹슬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짧은 답장 하나로 똑똑히 확인했던 것이다.
시험 있는데 라면 끓이고 사이다 놓고 간 친구
답장을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대학 시절 자취방에서 함께 구르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대학 시절 내가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자취방 싱크대에 머리를 그대로 받힐 뻔했을 때, 녀석은 망설임 없이 달려와 내 옷덜미를 잡아채서 위험에서 건져주었었다. 다음 날 아침 자기 본전공 기말고사 시험이 당장 걸려있어서 일찍 나갔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나를 위해 해장 라면을 보글보글 끓여두고 머리맡에 시원한 사이다 한 병을 챙겨 놓은 뒤 조용히 도서관으로 향했던 친구였다. 정작 자기 시험 공부할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취해서 널브러진 친구가 혹시나 아침에 일어나 속이 아플까 봐 사이다 뚜껑까지 살짝 열기 편하게 손봐두고 떠났던 그 깊은 배려와 마음씀씀이가 세월이 지나서야 가슴 깊숙이 소름으로 밀려왔다. 그때의 나는 그 사이다를 당연하게 마시며 속을 달랬었지만, 나이를 먹고 세상의 각박함에 치여보니 그렇게 아무 대가 없이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을 내어주고 머리맡에 사이다를 놓아둘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귀하고 드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험 있는데 밤새 라면 끓여주고, 머리맡에 사이다 놓고 도서관 갔다. 그 밤에 녀석이 머리맡에 두고 간 사이다처럼 묵묵하고 깊었던 그 마음을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이번 주말에 바로 녀석의 동네로 찾아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원한 술 한 잔을 내가 먼저 대접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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