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격 37개 폴더 이름을 '탈출'로 바꿨다. 어느 날 밤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마우스 우클릭을 눌렀다. 그전까지는 회사 이름과 제출 날짜, 그리고 뒤에 '불합격'이라는 딱지가 차갑게 붙어있던 폴더들이었다. 서류 탈락 통보를 받을 때마다 가슴에 비수를 찌르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폴더명을 '탈출 1', '탈출 2'로 이름을 바꿔버린 순간, 이상하게도 바닥을 치던 마음이 조금씩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1. 쇼생크 탈출, 취업 37번 탈락 폴더 이름을 바꾼 날서류를 접수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내 하루 전체가 인질로 잡히는 기분이었다. 지원 완료 버튼을 누르고 난 뒤부터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새로고침(F5) 키를 연신 눌러대며 이메일함과 합격 조회 창을 들여다봤다.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스마트폰 진동..
그날 밤 친구가 얼음컵 물방울 쓱 닦더니 '우리도 벌써 열 번째 여름'이라고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심야 영화로 '우리의 열 번째 여름'을 같이 보고 나와서,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캔맥주와 얼음컵을 놓아두고 앉아있던 때에 벌어진 일이다. 영화가 끝난 뒤 한참 동안 둘 다 말이 없다가, 테이블 위에 흥건하게 고인 맺힌 물방울을 친구가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쓱 닦아내며 던진 그 한마디가 내 가슴속 깊은 곳을 아주 묵직하게 건드렸다.우리의 열 번째 여름, 연애 소설 아닌 10년짜리 인생 다큐누군가 이 영화를 두고 '달달한 청춘 로맨스 여름 영화지?' 하고 물어본다면, 이 영화를 실제로 본 사람들은 다들 억울해하면서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반박하는 영화다. 겉보기에는 새파란 여름날의 푸르른 배경과 청춘 남녀의..
청소 스태프 들어올 때까지 자리 못 일어났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의 마지막 글자가 올라가고 상영관 조명이 환하게 켜질 때까지 발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밀대걸레를 든 청소 스태프가 들어와서 나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들어올 때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가 끝난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여전히 그 깊은 바닷속에 짓눌러둔 채 방치해 두고 나온 기분이었다. 헤어질 결심 5회 차, 볼 때마다 달랐다영화관에서 2번 보고, VOD가 나오자마자 3번을 더 결제해서 총 5번을 봤다. 보통 같은 영화를 5번이나 보면 장면이나 대사가 익숙해져서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볼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레이어가 껍질 벗겨지듯 드러나며 달랐다. 1회 차엔 엔딩의 묵직한 충격 때문에 청소 스태프가..
남편이 손 잡고 첫마디가 '치킨 먹고 싶었지?'였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길에 내가 가슴 먹먹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남편이 쓱 내 손을 잡으면서 던진 첫 문장이었다. 영화 그린북을 다 보고 나온 직후라 잔잔한 감동의 여운에 푹 젖어있었는데, 그 뜬금없는 치킨 질문 하나에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의 허탈하면서도 웃긴 감정이 그 밤 전체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그린북 심야 관람, 에어컨 피서로 시작됐다사실 이번 영화 관람은 대단한 계획이 있어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열대야 때문에 집안이 푹푹 삶아지듯 더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에어컨 바람이라도 쐬면서 좀 쉬어보자는 피서 겸 즉흥적으로 집 근처 영화관으로 향했다. 평소에 그린북이라는 영화가 정말..
어릴 때는 치킨 사달라는데 백숙 끓여주는 할머니가 답답했다. 그런데 스물다섯에 다시 봤더니 달랐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그 장면들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다시 화면으로 마주했을 때는 전혀 다른 울림과 깊은 무게감으로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집으로... 첫 관람, 치킨 안 사주는 할머니가 답답했다어릴 때는 치킨 사달라는데 백숙 끓여주는 할머니가 답답했다. 세상을 모르는 아이의 눈에는 그저 내가 원하는 바삭한 프라이드치킨을 안 사주고 말도 안 통하는 백숙을 내놓는 시골 할머니의 고집과 상황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떠올리면서 내 블로그를 돌아보니 상황이 너무나도 똑같았다. 2~3개월 동안 30~40개 글을 쓰면서 도대체 나만의 독창적인..
팝콘 쥐고 있던 손을 멈추고 엉덩이를 의자 끝까지 빼서 들이밀다가, 빵 터지는 순간에 의자에서 펄쩍 뛰다시피 하면서 깔깔거렸다. 조카아이를 데리고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눈앞에서 펼쳐진 장면이다. 아이가 평소에 그렇게 리액션이 크거나 유난스러운 편이 아닌데도, 미니언즈와 몬스터들이 화면에 나오자마자 거의 정신을 못 차리고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나도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데 너무 웃겨서 영화 절반은 조카 재롱 보는 맛으로, 절반은 화면 속 미니언들 사고 치는 맛으로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봤다.미니언즈 & 몬스터즈 웃음 횟수, 최소 7~8번영화 상영 시간 내내 소리 내서 빵 터진 게 최소 7~8번은 족히 넘었고,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피식거린 것까지 합치면 사실상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